자유로운

하루

서희 . 2019. 7. 17. 18:19



지병이 생긴 지 한 20년 되었다.
한번도 혼자 병원에 간 적 없는데 어제는 혼자 가보았다.
하루가 온통 소요되는 관계로 미안하기도 하고, 이따금 투덜대는 것이 싫기도 하였다.
이전부터 혼자 가보려고 여러 번 시도했으나 굳이 같이 가곤 했다.
그리곤 올 때는 길이 막히면 짜증을 낸다.  
짜증을 내니 나도 짜증이 난다.

암튼 오후 근무를 오전 근무로 바꾸고 쫓아오지 못하게  바로 병원으로 갔다
예약 시간  2시간 전까진 피검사를 해야 한다.
늘 시간에 쫓겼는데 오늘은 시간이 넉넉할 것 같았다.
그런데...
4개월 전하고는 운영체계가 완전 바뀌어서 우왕좌왕했다.

그전에는 다음 검사비를 먼저 받아서 바로 채혈을 할 수 있었는데,
오는 대로 검사비를 계산하고 채혈을 하란다.
맞아... 4개월 전에 갔을 때 계산 시 이상하게 다음 검사비를 안 받더니만...
수납 대기자가 59명이었다.

최대의 실수...
얼떨결에 앉아서 기다리다 10명 정도 지난 다음에 '앗차!' 했다. 
이런... 카드 수납 가능한 기계가 있는 걸 깜빡했다.


또 달라진 게 있는데 어디에도 환자 이름이 노출되지 않았다. 
모두 코드화되어 번호로 움직였다. 예를 들어 A1234로
그러니 대기자 명단에 이름이 있는 것보다는 불편했다.
가지고 있는 부여받은 번호를 수시로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은 더욱 더... 
병원 도착순으로 번호를 부여받기에 다른 곳에서 지체하다 오면 번호가 들쑥날쑥하다.
나도 처음엔 내 번호 지나갔다고 해달고 했더니만 아직 아니라면서 차례 보는 법을 알려줬다.
직원들도 사람마다 물으니 무척 힘들다고 했다.
이렇게 변경된 이유는 개인정보 노출을 방지하기 위함이고, 
미리 다음 검사비를 안 받는 이유는 개인 돈을 병원에서 미리 받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체계야 처음만 혼란스럽지 곧 정착될 문제이고 결과적으로는 바르게 돌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같이 갔으면 밖에 나갔다 오던지 말벗이라고 될 텐데
검진 시간까지 2시간을 기다리는데 참으로 지루했다.
처음에는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낼 줄 알았다. 
주변에 나가서 우아한 점심을 먹고 찻집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시간에 맞춰 들어올 양이었다,
그런데...
날은 더운데 한참 걸어 나가야 하는 거리가 겁나서 
밖에서 점심 먹는 것을 포기하고 병원 내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해결하고 말았다.

그리고는 남는 게 시간이라 병원 내 사람들이 저절로 관찰되었다.
허리가 90도로 휘어진 할머니가 혼자 이리 갔다 저리 갔다 그 복잡한 과정을 다 하고,
어느 분은 아들인지 누구인지 젊은 이가 같이 와서 접수과정은 돌봐주는데 돈은 할머니가 지급하고...
비교적 노인환자들이 많이 보였다.
노인들은 부부가 같이 온 경우가 많았는데
보호자로 온 배우자도 잘 안 들리고, 잘 걷지 못하고 ... 그래도 보호자다.
복도로 산소호흡기 꽂은 사람도 지나가고, 머리 수술한 사람도 지나가고,
목발 짚은 사람도 있고...
중학생쯤 되는 어린 아이도 엄마하고 왔다.
별로 심각하지는 않은 지 엄마가 내일 또 와야 한다니까 오기 싫다고 투정을 부렸다.
그래도 내과 부근이라 상태가 심한 환자는 안보였다.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검진을 대기하고 있는데 35분 지연된단다.
늘 그렇듯이 대기석이 부족하여 서서 있는 사람이 많았다.
용케도 자리를 잡았는데 목발 짚은 아주머니가 서 있어 자리를 양보하니 미안하단다.
아니라고... 좀 덜 아픈 사람이 많이 불편한 사람을 생각해줘야 한다고...


의사 앞에서는 채 1분도 있지 않았다.
눈은 절대로 마주치지 않고 컴퓨터만 쳐다보며 말을 했다.
검사 결과로만 말하고 내 말은 그리 중요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다.
난 환자를 많이 봐야하는 의사의 스트레스를 이해하는 환자다.
오랜 지병이라 나도 약 타러 갔지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
 약 용량을 좀 줄이고 있는 중인데 결과가 좋지 않아 제자리로 돌아갔다.

약 타는데 대기 1시간... 또 그러려니 했다.

어느 할아버지는 병원 기계에서 빼오는 처방전을 안 가지고 약 타러 왔다.

보기에도 갑갑하다.

보행도 불편한데다 겨우 내려왔는데 10분을 걸어 다시 가야 할 판인데...

그러나 웬걸? 친절한 약국이다.

그 바쁜 와중에도 병원으로 전화 걸어 처방전을 팩스로 받아 해결해 드렸다.


대학병원 주변이라 약국이 많은데 생강차가 맛나서 그 약국으로 매번 간다.
ㅎㅎ 아니고 다른 집보다 주차하기가 좋아서 간다.
전철역까지 셔틀 차량이 있는데 처음으로 타보았다.
전철역 어디에서 내리냐고 묻기에 잘 몰라서 그냥 종로3가역 아무 곳이나 내려 달랬더니
그러면 고생할 텐데 이러면서 내가 타기 좋은 곳에 내려 주었다.
정말로 그 출구로 쏙 들어가니 많이 걷지 않고 타기에 수월했다.
종로3가역이 왜 그렇게 많이 걷는지 알았다.  
친절한 기사님이 1호선 라인은 이쪽이고, 3호선은 저기고, 5호선은 죠기라고 
도로 위에서 설명해 주는데  눈으로 봐도 그 거리가 꽤 멀었다.
만약에 내가 1호선 라인 아무 곳에서 내려서 5호선까지 가려면 겁나게 걸었을 것이다.

전철 안에서 4개월 치 커다란 약 봉지가 약간 민망하였다. 
하긴 다른 사람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련만 
흠뻑 늙지도 않은 사람이 커다란 약 뭉치를 안고 있자니 혼자 드는 자격지심이었다.

오전 10시 40분에 떠나 오후 6시에 집에 도착했다.
의사와 약 1분 만나기 위해 하루를 거의 보낸 셈이다.
집에 오니 진이 빠져 말도 크게 나오지 않았다.
다음부터는 좋든 싫든 같이 가야 덜 고생할 것 같았다.
도망치듯 혼자 간 것이 미련했다는...
그러나 덕분에 그간의 놓쳤던 고마움을 알게 되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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