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레이는

북유럽여행 후기-스웨덴 스톡홀름 이야기 (2016.8.8~9)

서희 . 2016. 9. 7. 23:53




여행 6일째 날 여행기를 쓰려고 하는데 한계에 부딪혔다.

바로 기록을 하여야 하는데 너무 늦어지는 바람에 6일째 날 기억이 엉켜버렸다.

하긴 아무리 홍삼액과 비타민을 가지고 다니며 몸을 보했어도 피곤이 몰려 올 날짜이긴 하다.

긴가민가한 기억을 더듬어 본다.


<2016. 8. 8 일정>


1994년 오슬로 동계올림픽이 개최된 릴레함메르에 이동하여

스키점프대를 본 후 바로 스웨덴 칼스타드로 가는 줄 알았는데 노선이 일부 변경되었다.


오늘 일정은 빡빡하지 않아 9시에 느긋하게 출발하여 2시간 30분이 소요되는 릴레함메르에 있는 스키점프대를 보러 갔는데 비가 주룩주룩 왔다.

여행 온 지 며칠 동안 비가 오락가락은 했어도

이렇게 많이 오는 빗속을 나가야 하는 경우는 없었는데 차에서 내리기가 망설여졌다.

릴레함메르의 스키점프대는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노르웨이에 처음 도착했던 도시 오슬로로 갔다. 


피오르드가 바다에 떠있는 형태로 만들어졌다는 오슬로 항에 세운 오페라하우스를 보고,  바다를 보며 점심을 먹었다.

일정이 널널한지 서둘지 않아 좋았다.

오후 일정은 스웨덴 국경을 넘어가서 칼스타드에서 1박을 하게 되어 있다.


대부분 저녁식사는 호텔에 짐을 푼 후 호텔식으로 먹었었는데,

호텔 도착 전 일반 식당에서 연어를 곁들인 한식을 먹었다. 

이 연어로 말할 것 같으면 ... 정말 입에서 살살 녹았다. 

연어를 기름기가 많아 평소에 잘 안 먹는 편인데 한 접시라도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어떤 이는 기름기가 적어 고소함이 적다고 이 맛이 별로라고 했다.


저녁에 숙소에 도착하여 404호를 배정받아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에궁, 우리의 가이드님 정말 필요한 안내는 생략하셨구만...

버튼을 눌러도 잉?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배정받은 방 번호 카드를 넣어야 작동되는 것이었다.

엘리베이터를 냉장고처럼 앞으로 여는 것은 본 적이 있는데,

카드 넣은 엘리베이터는 처음 경험이었다.

새로운 경험은 언제나 신기하다.


<2016 . 8. 9 일정>


오늘은 칼스타드에서 약 3시간 걸려 스톡홀름으로 이동하여 노벨상 시상식 및 만찬회가 열리는 시청사, 스웨덴에서 가장 오래된 바사호를 원형 그대로 전시한 바사호 박물관, 구가시지 감라스탄 지역을 본 후,

핀란드를 가기 위하여 오슬로 항에서 실자라인 훼리호를 탔다.

배에서 1박을 하며 시간은 13시간이 걸렸다.

마크에서 노르웨이 갈 때 탔던 배의 방보다는 조금 컸어도 창문 없는 비좁은 환경은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아, 잠자리 불편해!


내일 아침은 핀란드의 투르크 하늘을 볼 것이다.






빈스트라 숙소 밖 아침 풍경



 레함메르 스키 점프대

1994년 오슬로 동계올림픽이 개최된 릴레함메르 스키 점프대이다.

비가 주룩주룩 오지만 않았어도 자세히 살펴보았을 텐데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지나쳤다. 


동계올림픽 당시 유치비용을 최소화하고 간편화하기 위해 호수에 배를 띄워 임시호텔로 운영하고, 올림픽이 끝난 다음 그것을 다른 지역으로 팔아서 경제적인 이익을 얻기도 하였고,

아직까지도 각종 시설물을 잘 유지하고 있어 관광지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단다. 




오슬로 가는 길에 밀밭 풍경



오페라하우스를 향하여

보이는 배는 덴마크에서 우리가 타고 왔던 DFDS 훼리호






오슬로 오페하우스

일정에도 없던 오페라하우스를 들렸다,

미리미리 알았으면 사진 찍는 포인트를 잡아 찍었을 텐데 전체를 찍는 기회를 놓쳐 무척 아쉽다.

지만 않았어도 좀 더 세세하게 봤을 텐데 모든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 관람이었다.


이 오페라하우스는 350개의 설계 공모 중 선정된 오슬로의 대표 건축회사인 스뇌헤타가 디자인하여 2008년에 지어졌단다.

이 건물의 특징은 오슬로 피오르드가 바다에 떠있는 형태로 만들어졌고,

 32m 높이에서 바다로 완만하게 경사가 이루어져 계단 없이 지붕까지 오를 수 있으며,

지붕에서 오슬로 시내를 전망할 수 있으며 산책과 피크닉을 즐길 수도 있단다.

그런데 경사도가 제법 있어 걷기에는 불편하였다.

눈이 와서 미끄러울 때 넘어지면 그대로 바다로 풍덩할 것 같았다.

또한 대극장 외관과 계단은 자연 친화적으로 노르웨이 참나무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오페라하우스 식당에서 점심식사

메뉴는 전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창 너머 풍경에 취했었나 보다.



저녁식사

연어를 곁들인 한식을 맛있게 먹었다.

보통 해외여행 시 먹는 한식은 우리나라 음식점 중 제일 맛없는 집의 맛 정도인데

그런대로 괜찮았다.

된장국으로 구수하게, 연어회로 깔끔하게 입을 호강시켰다.

그런데 중국집에서 한식을 먹었던 것 같다. 희미한 기억이지만...




요것이 무엇인고?

얼른 호텔로 올라가 싶은 마음이 간절!

그러나 호텔 엘리베이터가 버튼을 눌러도 작동을 안했다.

알고 보니 죠기 구멍에 방 카드를 넣어야 했다.

호텔 손님 외에는 출입 통제가 될 것 같긴 한데, 그러나 실상 손님들은 익숙하지 않아 불편했다.


 


스톡홀름 굴절버스

스톡홀름에 입성하여 굴절버스가 첫눈에 들어왔다.

우리나라도 굴절버스를 몇 대 도입했다는데 실패하였다는 소리를 풍문으로 들었다.










스톡홀름 시청 외관 

스톡홀름 시청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청으로 손꼽힌다고 한다. .

1923년 라구나르 오스토베리에 의하여 세워진 후 스톡홀름의 최고의 상징물로 유명하다고 한다.

스톡홀름 시청은 연간 약 300여 행사를 하며, 매년 노벨상 시상식을 하는 곳이다.



스톡홀름 시청 내 공원 풍경

시청 청사에 들어서니 정원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라렌 호수와 건너편 섬들의 풍경들...뭐 이렇게 예쁜 도시가 다 있담?


스웨덴은 국토의 절반이상이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호수가 10만 여개나 되어  '숲과 호수'의 나라로 불린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은 14개의 섬으로 이루어지고 , 57개의 다리로 섬들을 연결하여 도시를 이루고 있다.

수많은 운하로 인하여 '북유럽의 베네치아'라고 불리며 세계에서 아름다운 도시로 손꼽힌다고 한다.

그러나 베네치아와는 같은 듯 다른 느낌이었다.

음... 스톡홀름이 좀 세련된 느낌이라면 베네치아는 제대로 운치가 있다고 할까?






스톡홀름 시청사 내 공원 풍경

라렌 호수는 발트해와 만나고 있어 푸르고 투명하며,물결은 잔잔하다고 한다.

도시 어느 곳에서나 만날 수 있는 숲과 호수의 어울림이 무척 아름답다.




1번째



2번째




스톡홀름 시청 내부 (블루홀 계단이야기)

노벨상 수상자는 시상을 위하여 2층 골든홀에서 1층 블루홀까지 내려오는 계단에서(1번,2번째 사진) 너무 떨거나, 시선이 딴 곳으로 가면 불안할 수 있어서 

건너편 벽 한 곳(2번째 사진의 별모양)을 응시하면서 천천히 내려온다고 한다. 

그렇게 걸어야 가장 우아하게 보일 수 있는 각도가 나온단다.


그리고 계단은 여성들이 긴 드레스와 하이힐을 신고 연회장으로 내려오다가 넘어지지 않게 계단의 단 높이는 낮게, 단 넓이는 넓게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설계자는 자기 부인에게 긴 드레스와 하이힐을 신겨 여러 번 오르내리게 하며 만들었다고 하다.


실제로 걸어보니 정말로 걷기에 편했다.



스톡홀름 시청 내부 (블루홀)

이 블루홀에서 노벨상 시상식도 하고 만찬을 한다고 한다.


시청 설계자 라구나르 오스트베리가 설계도를 공개 당시 푸른색으로 만들려고 공식적으로 '블루홀'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실제로 건축할 때 붉은 벽돌로 지어놓고 보니 이 또한 아름다워 푸른 색으로 덧씌우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공개해서 이미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름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블루홀'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스톡홀름 시청 내부(시의회 회의실)

격주 월요일에 시의회가 열리며 회의 내용은 인터넷과 방송으로 생중계된다고 한다.

양측에 참관석이 있는데 200명 정도의 시민들이 누구나 자유롭게 회의를 참관할 수 있다고 한다.

시의원은 101명이고, 시의원들은 자전거를 타고 와서 회의에 참석한다고 한다.



시의회의실 천정의 눈동자 문양

시청사 시의회 건물 천장에 새겨진 눈동자는 의원들이 결정하는 모든 의정활동은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으므로 보다 신중하게 심의하라는 뜻이란다.






스톡홀름 시청 내부 (골든홀)

스톡홀름 시청의 하이라이트인 골든홀이다.

1,900만 개  정도의 금도금 모자이크로 장식된 화려한 곳으로 매년 12월 10일 노벨상 수상자들을 위한 무도회가 열리는 곳이다.

 

앞에 보이는 여인은 '말라렌 호수의 여신' 이라고 하며 , 스톡홀름를 지키는 수호신이란다.





요것이 무엇인고 ?

시청 입장 시(유료) 요런 스티커를 몸에 붙혀주는데(단체 뷔페 입장시 처럼) , 다 보고 나갈 때 아무 곳이나 버릴까봐 스티커를 붙히는 곳을 마련해 놓았더란 얘기다.  종은 생각!

 



시청사 내 상점 진열품 중

자작나무로 만든 항균 행주이다. 화려하다.

선물용으로 몇 개 사왔다.

비틀어 짜지 않아도 되고, 한번 쥐어서 짜면 물기가 쫙 빠지고, 식탁을 훔쳐도 물기가 남지 않는다는 행주이다.

그런데 선물만 하고 나는 아직 사용해 보지 않아서 검증 절차는 남아 있는 셈~







스톡홀름 거리 풍경

가로등이 하늘에 달려 있다.

그리고 전봇대가 밖으로 안보여 도시 모습이 정돈되어 보인다.




긴 줄은 ?

바사박물관 들어가기 위한 줄이다.

실제로 북유럽에서 사람들이 제일 많이 찾는 박물관이란다.




바사 박물관 내부

바사 박물관은 1628년 8월 10일 처녀 항해 시 침몰한 전함 바사호를 333년만에 1961년에 인양하여 복원한 후 전시해 놓은 곳이다.

박물관 안으로 입장하자 너무 어두워서 어리둥절 하는 사이 어마어마한 크기의 바사호를 만났다.

스웨덴의 현존하는 유일한 17세기 배이고, 크고 화려하지만 잘못 만들어져서 왕과 국내외 귀빈들이 출정식을 바라보고 있는 자리에서 기우뚱거리며 침몰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설계한 사람은 처형당하고...

박물관은 총 4층으로 각층마다 바사호의 준공, 취항, 침몰, 인양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바사 박물관 내부 (대형솥)

박물관에는 바사호와 관련된 자료와 수장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것은 대형솥이다.





바사 박물관 내부 (당시의 인양 도구였던 다이빙벨)

수심의 깊이 정도에 따라 산소량이 달라진다고 한다.

수심 30m 해저에서는 최대 30분정도 작업 할 수 있었단다.

세월호 사건 때문에 처음 들어 본 다이빙벨이렸다.















다리 건너 감라스탄 지역을 보러 가는 중 시가지 모습 

곳곳에 놓인 요트가 그들의 문화생활을 짐작하게 한다.

하지만 스웨덴 사람들 개인은 절대 부자가 아니고. 나라가 부자란다. 


나라는 복지정책으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  모든 것을 지원해주므로 개인들간의 경쟁심이 없고  개인의 행복 추구가 목표인 삶을 산다고 한다.

이런 삶의 자세는 북유럽 사람들의 공통적인 모습으로 보인다.



감라스탄 지역 내 스톡홀름 왕궁

구시가지 감라스탄 지역 북쪽에 위치한 스톡홀름 왕궁은 1697~1754년에 걸쳐 만들어졌는데,

 600여 개의 방이 있는 세계에서 제일 큰 왕궁이라고 한다.

왕은 1982년까지 여기서 살았는데 지금은 국빈을 위한 만찬장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왕궁 근위병 교대식을 12시에 하는데 우리는 시간이 안 맞아 볼 수는 없었지만 볼만하다고 한다. 남녀평등이 확실한 북유럽 국가답게 근위병 중 여자가 쾌 많다고 한다.




감라스탄 지역 내 링컨 박물관

1776년 지어진 건물로 증권거래소로 이용하다가 개조하여 노벨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1층에는 노벨상 수상자 관련 자료와 역사 자료를 전시하고, 2층에는 노벨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 아카데미 본부라고 한다.














감라스탄 지역 내 스토토리에트 광장

스톡홀름에서 가장 오래된 광장이며, '피의 광장'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지금은 평화로운 시민들의 광장이지만 스톡홀름 대학살이 일어난 장소라고 한다.


1520년에 일어난 스톡홀름 대학살 사건은 당시 덴마크의 지배하에 있었을 때 일이다.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2세가 이 곳 호텔에 묵었는데, 독립을 원하던 사람들이 스웨덴 왕을 암살하려다 실패했는데, 보복으로 덴마크 왕이 스웨덴 귀족 82명을 이곳에서 학살한 사건이다.


당시 살아남은 구스타브 바사의 독립 운동에 의해 스웨덴은 1523년 독립을 쟁취하였다고 한다.

광장의 우물은 지금은 먹을 수 있는 물인데 , 대학살 당시에는 우물 안에 핏물로 물들었었다고 한다.

광장은 크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의 휴식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